문천상(文天祥, 1236~1283)

문천상(文天祥, 1236~1283)


남송 말기의 정치가‧시인‧충신으로, 원(몽골)의 침략 속에서 끝까지 나라를 지키려 한 대표적인 인물. 
중국 역사에서 ‘충의(忠義)의 상징’으로 가장 널리 기억되는 인물 중 한 사람.

생애 개요

자: 송륜(宋瑞)
호: 문산(文山)
남송 말기(13세기)의 재상, 시인, 유학자

문천상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나 진사급제(1256) 후 관리가 되었고, 남송의 멸망기 동안 강직한 성품과 순절 정신으로 유명해졌다.

남송 멸망과 문천상의 항원(抗元)
1250~1270년대, 원나라(쿠빌라이의 몽골 제국)가 남송을 압박하자 문천상은 적극적으로 항원(抗元) 활동에 참여.

1275년 : 원군이 남하하자, 문천상은 외교 사절로 나갔다가 포로가 되나 탈출.
1276년 : 
남송 조정이 항복하자 그는 강경하게 반대했고, 어린 황제 조빙(宋帝昺)을 지켜 남은 세력과 함께 끝까지 저항했다.
1277~1278년
남해 일대에서 항원군을 지휘, 끝까지 싸우려 했으나 결국 다시 포로로 잡힘.
순절(1283)
원 세력은 그를 등용하려 했으나 문천상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는 사형되기 직전까지도 충성과 절개를 지키며 시를 남겼고, 1283년 북경(당시 대도)에서 순국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송 말 삼걸(三傑)” (문천상, 육수부(陆秀夫), 장세걸(张世杰))로 불린다.

대표 작품

가장 유명한 작품은 사형 전 옥중에서 지은 〈정기가(正氣歌)〉
그리고 유언과도 같은 시 〈과릉보(過零丁洋)〉

정기가(正氣歌) 중
“人生自古誰無死,留取丹心照汗青。”
(인생은 예로부터 누가 죽지 않겠는가? 붉은 충심 남겨 역사에 빛나게 할 뿐.)
→ 중국 역사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충절의 시구 중 하나.


평가

남송 말기의 충신, 불굴의 저항 정신의 상징
유학적 대의를 실천한 대표적 인물
그의 시는 절조(節操)와 기개를 담아 강건한 문체로 평가됨
명·청 시대에 특히 높게 숭배되며 사당과 사묘가 많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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