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高適, 약 702~765)

고적(高適, 약 702~765)


당대(唐代)의 대표적 시인 

생애

성명: 高適(고적)
자(字): 達夫(달부)
생몰: 702? ~ 765
시대: 당 현종·숙종 때 활동
출신: 난주(蓮州, 오늘날의 안휘성 일대로 추정)
신분: 비교적 가난한 집안 출신
직업: 시인, 관료, 군무직
문학사적 위치: 변새시(邊塞詩)의 대표 시인 중 한 사람
왕창령(王昌齡), 왕지환(王之涣)과 함께 “변새시 삼가(三家)”로 꼽힘

젊은 시절
고적은 젊은 시절 오래도록 과거시험에 급제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이 시절의 경험이 그의 시에 호방하고 강직한 기풍으로 녹아들었다.

안록산의 난(安史之亂) 이후 관직에서 두각
755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고적은 절도사(軍司) 가동(哥舒翰)의 휘하에서 군무를 맡았다.
이후 반란이 진압되는 과정에서 숙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형부시랑(刑部侍郎)'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등 고위 관직을 지냈다.

말년
정치적으로 여러 파벌이 충돌하는 가운데 불안정한 처지에 놓였고, 765년 사망했다.

문학적 특징

변새시(邊塞詩)의 대가
고적의 대표적인 문학적 업적은 변방과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 ‘변새시’.
특징 - 강한 호방미(豪放美) / 병사·장수의 감정과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 / 웅대한 자연과 인간의 운명을 대비 / 서정과 서사의 조화

시풍(詩風)
굳세고 웅건(雄健)하며 감정 표현이 투박하면서도 힘이 있음
도식적 아름다움보다 직설적이고 인간적인 진솔함 강조
생활 고난의 경험이 시의 깊이를 더함

대표작
《燕歌行》 
  : 변새시의 최고봉으로 평가됨.
  : 군인의 고통과 전쟁의 참혹함을 드라마틱하게 묘사
   : 벗 董大(동대)와의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 그중 其一은 중국에서도 오늘날까지 널리 암송됨.

《塞下曲》 : 변방의 풍경과 군사의 용맹을 묘사.

평가

시풍이 거칠면서도 기개가 넘쳐, “호한감사(豪漢感事)”의 시인으로 불림.
당시 혼란한 정국 속에서 전쟁의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노래한 시인 중 한 명.
두보(杜甫), 왕유(王維)와 함께 당대 시단의 중요 인물로 인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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