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春花秋月何時了(춘하추월하시료)
봄꽃과 가을 달 언제 다하려나
往事知多少(왕사지다소)
지난 일 얼마나 그리운지
小樓昨夜又東風(소루작야우동풍)
작은 누대 어젯밤 또 봄바람이 불었는데
故國不堪回首月明中(고국부감회수월명중)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차마 옛 땅으로 고개 돌릴 수 없었네
雕欄玉砌應猶在(조란옥체응유재)
조각난 난간, 옥으로 깎은 섬돌 아직도 있으련만
只是朱顔改(지시주안개)
아름답던 얼굴만 세월 따라 변했구나
問君都有幾多愁(문군능유기다수)
그대에게 묻노니 품은 수심 얼마인고
恰似一江春水向東流(흡사일강춘수향동류)
봄 강물 동쪽으로 흐르는 만큼이라네
남당(南唐) 마지막 임금 이욱(李煜, 937~978)이 지은 가장 유명한 사(詞) 작품 중 하나로, 한편으로는 황제에서 포로로 전락한 비극적 심경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작품.
봄꽃과 가을 달 언제 다하려나
往事知多少(왕사지다소)
지난 일 얼마나 그리운지
小樓昨夜又東風(소루작야우동풍)
작은 누대 어젯밤 또 봄바람이 불었는데
故國不堪回首月明中(고국부감회수월명중)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차마 옛 땅으로 고개 돌릴 수 없었네
雕欄玉砌應猶在(조란옥체응유재)
조각난 난간, 옥으로 깎은 섬돌 아직도 있으련만
只是朱顔改(지시주안개)
아름답던 얼굴만 세월 따라 변했구나
問君都有幾多愁(문군능유기다수)
그대에게 묻노니 품은 수심 얼마인고
恰似一江春水向東流(흡사일강춘수향동류)
봄 강물 동쪽으로 흐르는 만큼이라네
남당(南唐) 마지막 임금 이욱(李煜, 937~978)이 지은 가장 유명한 사(詞) 작품 중 하나로, 한편으로는 황제에서 포로로 전락한 비극적 심경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낸 작품.
이욱은 조국이 송나라에 멸망한 뒤 개봉에서 억류된 상태로 이 작품을 남겼고, '우미인'은 망국의 군주가 쓴 최고의 비가(悲歌)로 평가된다.
1. 사문학의 정점
이욱이 남긴 사(詞)들은 후대에 “사중지용(詞中之龍)”이라 불릴 정도로 비애 / 섬세한 감정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하였다.
2. 왕에서 포로로 전락한 절망
자기 삶을 직접 노래한 만큼 감정이 사실적이며 강렬하다.
'우미인'은 그의 개인 신세 + 나라의 몰락이라는 이중 비극이 결합된 작품.
3. 청려하고 정확한 비유
“한강의 봄물”과 같은 단순한 이미지 하나로 끝없는 비애를 압축해 표현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그런데 왜 제목이 우미인(虞美人) 인가?
우미인(虞美人)이라는 제목은 실제 시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제목이 아니라, 사(詞)의 정형(詞牌) 이름이다.
즉 곡조의 이름이지 작품의 제목이 아님.
사(詞)에서는 제목이 아니라 ‘조명(曲牌, 詞牌)’을 쓴다
1. 중국 사(詞)는 오늘날의 노래처럼 정해진 곡조(멜로디)마다 이름이 있었고, 시인은 그 곡조에 맞추어 새로운 가사를 쓰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虞美人 = 사조(詞牌)
내용과 직접 관계 X
2. 단지 이 곡조 규격(자수·운율·리듬)에 맞춰 창작했다는 뜻.
3. 이욱이 지은 작품이 “〈虞美人〉”이라는 제목을 갖는 것이 아니라, ‘虞美人조’로 지은 사(詞)라는 뜻.
그런데 왜 곡조 이름이 ‘우미인’인가?
虞美人(우미인)은 본래 楚漢전쟁 당시 항우(項羽)의 연인 ‘우희(虞姬)’에서 유래한 이름.
전설에 따르면 항우가 패망하자 우희는 자결하여 항우를 따른 비극적 미인으로 전해짐.
후대에서 이 비극적 사랑·슬픔의 상징을 곡조 이름으로 차용하여 사조(詞牌) “虞美人”이 생긴 것.
따라서 ‘虞美人’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름다움/ 비애 / 비극'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욱이 망국의 심정을 쓰기에 상징적으로도 잘 맞는 조명(曲牌, 詞牌)이었다.
즉...
고대 사(詞)는 제목이 아니라 사조(詞牌, 곡조명)만 붙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이욱이 실제로 붙인 제목은 「虞美人」(사조명) 뿐이며,
지금의 “春花秋月何时了” 같은 구절은 후대 편집자가 구분을 위해 붙인 ‘시두(詞頭)’이다.
따라서 원래 형태는
虞美人
(※ 시두(詞頭): 「春花秋月何时了」 ← 후대에서 삽입)
Tags:
고전(古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