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이백(夢李白)



몽이백(夢李白 : 꿈속에 이백을 보고)



(其一)

死別已呑聲 生別常惻測(사별이탄성 생별상측측)
죽어 이별도 목메이는데
살아 이별 늘 슬프고 슬퍼

江南瘴癘地 逐客無消息(강남창려지 축객무소식)
강남 땅엔 풍토병이 많다는데
귀양간 객(이백) 소식 없오

故人入我夢 明我長相憶(고인입아몽 명아장상억)
친구가 꿈속에 들어옴이
내 오랜 생각이 나타남이리라

恐非平生魂 路遠不可測(공비평생혼 노원불가측)
평상시의 혼이 아니듯 한데
길이 멀어 알 수가 없소

魂來楓林靑 魂返關塞黑(혼래풍림청 혼반관새흑)
혼이 들 땐 단풍숲 푸르더니
혼이 날 땐 관문이 컴컴하오

今君在羅網 何以有羽翼(금군재라망 하이유우익)
지금 그대 법망에 걸렸으니
무슨 날개가 있으리오

落月滿屋梁 猶疑照顔色(낙월만옥량 유의조안색)
지는 달 들보에 가득 비추니
그대 얼굴 보는듯 하오

水深波浪闊 無使蛟龍得(수심파랑활 무사교룡득)
물 깊고 물결 크게 이니
이무기에게 잡히지 마시길


(其二)

浮雲終日行 遊子久不至(부운종일행 유자구부지)
구름 종일 떠가는데
나그네 오랫동안 오지 않고

三夜頻夢君 情親見君意(삼야빈몽군 정친견군의)
사흘 밤 자주 그대 꿈꾸니
정 깊은 그대 뜻 알겠소

告歸常局促 苦道來不易(고귀상국촉 고도래불이)
가겠다고 늘 조바심하고
오는 길이 쉽지 않다 말하는데

江湖多風波 舟楫恐失墜(강호다풍파 주즙공실추)
강호에 풍파가 많아
배 노 젓다 뒤집힐까 두렵소

出門搔白首 若負平生志(출문소백수 양부평생지)
문을 나서며 백발 긁으니
마치 평생 뜻 저버린 듯

冠蓋滿京華 斯人獨憔悴(관개만경화 사인독초췌)
고관들 장안에 가득한데
이 사람만 홀로 초췌하오

孰云網恢恢 將老身反累(숙운망회회 장로신반루)
뉘 하늘 그물 넓다 했나
늙어서 몸이 도리어 연루되니

千秋萬歲名 寂寞身後事(천추만세명 적막신후사)
천 년 만년 이름 떨친다 해도
몸 죽은 뒤엔 적막한 거지요



두보는 이백(李白)과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절친한 시인이었지만, 실제로 함께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후 전국이 혼란해지고 서로 연락이 끊기자, 두보는 이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러 편의 시로 남겼는데 그 대표작이 바로 몽이백(夢李白)이다.

1. 두보와 이백은 당현종(唐玄宗) 천보(天寶) 4년(745) 연주兗州(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서남쪽)에서 헤어진 후,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했다.
2. 당숙종(唐肅宗) 지덕(至德) 2년(757) 2월, 이백이 의탁했던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군사가 패하여 죽자, 이백은 팽택(彭澤)으로 몸을 피해 머물렀다가 심양(潯陽)에서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
3. 그 후 석방되었다가 건원(乾元) 원년(758) 야랑(夜郞)으로 유배되었다.
4. 이백은 동정호(洞庭湖)와 삼협(三峽)을 거쳐 무산(巫山)에 이르렀다가 사면되었다.
5. 건원 2년(759) 여름의 일이었다.
6. 이때 두보는 낙양을 거쳐 화주(華州)에 머물면서 이백에게서 오는 소식은 받아보지 못하고 떠도는 소문만 듣고 있었는데, 소문 중에는 이백이 야랑으로 가는 도중에 물에 빠져 죽었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夢李白二首」는 이런 상황에서 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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